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가 되고 싶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늘 더 좋은 존재가 될 수 있으며, 늘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지금의 자기 자신보다 나아지려고 애쓰다 보면, 나는 언젠가 나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인생이 그저 그러려니 생각지 마라. 마음 속에 이루지 못한 꿈을 품어라. 자신의 이야기를 품어라. 그리고 매일 조금씩 그 길을 가라.
여행은 자유다. 그리고 일상은 우리가 매여있는 질서다. 질서에 지치면 자유를 찾아 떠나고 자유에 지치면 다시 질서로 되돌아온다.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에 매여있는 우리에게 여행은 늘 매력적인 것이며,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비장하지 않다. 여행처럼 설레는 것은 없다. 지도처럼 매혹적인 것 또한 없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강진의 햇살이 느껴지고, 마량에서는 500년 전과 같이 제주에서 들어온 배에서 말들이 투레질을 하며 내려오는 듯하다. 해남 대흥사의 숲이 가득한 어느 길목에서 나는 젊디젊은 나와 만나게 된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왜 그리도 마음이 아팠던가? 왜 그때 진도에서 울돌목을 건너와 길가의 그 바위에 그렇게 앉아 있었던가?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이다. 달빛 그윽한 밤에 홀로 걷는 것이다. 어느 낯선 포구 신새벽에 플라스틱 통 속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보는 것이다. 매화 향기 그윽한 강가에서 술을 한잔 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 벚꽃 잎들이 눈처럼 날리는 그 찰나에 그리움으로 터져버리는 것이다. 여행은 다른 사람이 덮던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쓰던 밥그릇과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다녀간 낡은 여관방 벽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낡은 벽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른 사람을 자신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이 좋지 않다는 인식은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자신에게 설득시키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낸다. 어려워야 비로소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 절실함이 바로 '지금' 변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절실함'이 없으면 변화는 늘 '내일의 일'에 불과하다. 나는 절실하지 않은 변화가 성공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허위고 왜곡이고 기만이고 투정에 불과하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절실함'이라는 변화의 원동력은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힘'이라는 것이다. 방향을 가질 때 힘은 비로소 유용한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다. 힘에 방향성을 실어주는 것이 바로 '꿈'이다. 나는 불만이 많은 사람을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갈 곳이 분명한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다. 역시 갈 곳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한다. '갈 곳'이 바로 꿈이다. 이룰 꿈이 없는데 어떻게 꿈이 이루어지는가?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갈 곳'을 알려 줄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갈 곳을 찾아내는 것은 자신에 대한 책임이다. 꿈은 꾸어질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