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나의 힘

오직 독서뿐 / 정민

옛글은 쓰고 싶어 쓴 글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 글이다. 제 자랑 하자고 쓰지 않고, 이 말을 하지 않고는 세상을 살다간 보람이 없겠기에 안타까워서 썼다. 옛글을 곱씹어 여러 번 읽으면 그 안에 담긴 뜻이 내 것이 된다. 하지만 다른 글도 널리 읽어 견줘 보아야 그 말의 전후 맥락이 소연하게 드러난다. 1만권 쯤 읽고 나면 뱃속에 백만 대군이 들어앉은 것 같아 거침이 없게 된다. 아무리 어려운 책도 읽고 또 읽으면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순간이 온다. 읽어야 할 책은 너무도 많고, 새겨야 할 뜻은 차고 넘친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자리걸음만 되풀이하니 이 아니 안타까운가.

예전 한나라 때 상자평은 자식들 혼사가 끝나자 집안일에 완전히 손을 떼고 자유의 유람인이 되었다. 요악을 두루 돌며 삶을 마쳤다. 하지만 나는 집 안에서 한 발짝 나가지 않고서도 천지만물의 이치와 지상의 동천복지, 즉 온갖 낙원들을 두루 다 다녀보았다. 상자평은 힘들게 산에 올라 통쾌함을 맛보았지만, 나는 책 한 권을 뗄 때마다 마음이 툭 트이고 정신이 한없이 맑아져서 세상이 문득 낯설어지고 새로워지는 경이를 맛보곤 했다. 손도 안 들고 힘도 들지 않고, 다만 기쁘고 즐거웠을 뿐이다. 어찌 독서를 하지 않겠는가? 어찌 정성을 쏟아 읽지 않겠는가?

공부는 머리로 하지 않고 엉덩이로 한다. 진득하니 눌러앉아 미련을 떨고 해야지, 약삭빠르게 이리저리 빠른 길만 찾아다녀서는 아무 성취가 없다. 낫은 잡초 벨 때나 유용하지 아름드리 거목을 벨 때는 아무 쓸모가 없다. 잡초라면 낫만 들고도 아무렇게나 썩썩 벨 수가 있지만, 아름드리나무를 베려면 큰 도끼의 날을 버려 어깨에 얹고 힘차게 수백 수천 번을 찍어야 한다. 한 번 찍을 때마다 조금씩 패여서 이 한 번이 쌓이고 쌓여 그 거목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땅에 눕고 만다. 공부의 바탕이 되는 기본 경전들은 한 5천 번씩 읽고, 그 밖에 중요한 책들로 분량이 워낙 많은 것은 고갱이만 추려서 1백 번 쯤 읽는다. 그가 읽은 독서의 목록과 횟수를 살펴보면, 그의 일생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봄부터 겨울까지 다만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책만 읽은 것이 된다. 이런 독서의 온축 위에서 그 웅혼한 학문과 문장이 터져 나왔다.

섣불리 의욕만 넘쳐 덤벼들면 제 발에 제가 걸려 넘어진다. 공부는 기본기가 중요하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삐딱하게 보아 문제의식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기가 없이는 망발만 하게 된다. 특히 선현의 말씀을 공부할 때는 더 낮추고 더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상심으로 읽어야지 시비를 걸겠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심술이 삐뚤어진다. 덮어놓고 큰소리치고 제 주장만 내세우려 들면 몹쓸 사람이 된다.

많이 듣고도 말을 아끼고 많이 보고도 행동을 삼가, 살피고 따지고 밝히고 가늠해서 마음속에서 지혜의 구멍이 뻥 뚫려야 한다. 알량한 공부 해 놓고 건방만 떨고 교만만 배워, 혼자 날뛰고 잘난 체하는 것은 자득이 아니다. 마음으로 익히고 몸으로 느껴, 이것이 습관처럼 오래되어 원래 있던 것처럼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이 자득이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 인간의 윤리, 이런 것들을 바로 닦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다. 이런 것을 넘어서서 무시해도 좋을 공부는 세상에 없다.

공부는 집중이다. 독서는 안으로 의미를 길어 올리는 훈련이다. 큰 소리와 움직이는 눈동자, 흔들리는 몸뚱이로는 안 된다. 몸을 기둥처럼 곧추세우고, 눈은 책 위로만 고정시켜라. 소리는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을 정도로만 절도 있게 낸다. 공연히 큰 소리로 몸을 흔들며 폼 잡지 말라. 폼을 잡을수록 보람이 적어진다. 내실을 기하고, 무게를 깃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쓸데없는 생각이 콕 박히면 잡념雜念이요, 떠오른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 상념想念이다. 공부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이 뜬생각이다. 뿌리도 없이 제멋대로 떠다니며 사람 마음을 이랬다저랬다하게 만든다. 이래 가지고는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뜬생각을 걷어 내는 공부가 우선이다. 그런데 뜬생각을 없애려 마음먹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문제다. 어거지로 없애려 들면, 없애고 말겠다는 그 집착이 또 하나의 뜬생각을 만든다. 나는 뜬생각에 더 교란되고, 둘러싸여 어찌해 볼 수조차 없게 된다. 어찌 해야 할까? 역시 답은 바른 자세에서 출발한다.

의문이 돋아나면 공부가 자랐다는 의미다. 공부가 더 커지면 온통 모두 모를 것투성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모를 것투성이라야 한다. 처음엔 당연하던 것이 왜 그럴까로 바뀌어야 한다. 무미건조하던 글이 가슴에 콕콕 맺혀 와야 한다. 절절하고 아프다. 그땐 왜 몰랐을까 싶다. 안타깝고 부끄럽다. 마음속에서 이런 작용이 활발해지면 내 공부가 비로소 궤도를 잡아 가고 있다는 증거로 보아도 좋다.

마을의 꼬맹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읽기 싫어함을 야단치자 이렇게 말하더군요. "하늘을 보면 파랗기만 한데 하늘천天 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가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이 글자 만든 창힐을 기죽일 만합니다.

책 읽은 보람은 어디서 나타나는가? 눈빛이다. 책을 잘 읽고 나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책 읽기 전의 나와 책 읽은 뒤의 나는 확연히 다르다.

공부가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는 것은 써먹을 공부만 하기 때문이다. 어디다 써먹을까 하고 궁리하는 사이에 참 공부는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공부에 진전이 없던가? 이 책 읽어 어디다 써먹어야지 하는 생각부터 버려라. 기껏 제자백가를 섭렵하고, 사서삼경을 줄줄 외워서 써먹을 궁리와 출세할 요량뿐이라면 차차리 책을 덮고 안 읽는 편이 훨씬 낫다. 독서는 그 자체로 합목적적이다. 읽어서 마음이 기쁘고, 생각이 변하며, 삶이 바뀐다. 이보다 더한 보람이 어디 있는가?

사람이 삼시 세 때 끼니를 거르지 않듯 독서는 선비의 일상사요 다반사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김새부터 가증스러워진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갑자기 천해진다. 자연스럽던 몸놀림이 부자유스러워지고, 화평하던 마음자리도 두서가 없어진다. 그래서 불안해진 나머지 바둑 장기에 마음을 팔고, 술 먹고 취해 불안을 잊으려 든다. 사람이 허랑방탕해지는 것은 책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책을 손에 잡으면 다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책은 통째로 온전히 읽어야 한다. 저 읽고 싶은 데만 골라 읽거나,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보람이 적다. 세상일에 관심 많은 사람은 <사기>에서 처세술을 읽고, 글 쓰는 일에 마음을 쏟는 사람은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문장에 감탄한다. 수험생은 답안지에 써먹을 만한 구절을 찾느라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읽은 것은 다 같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읽었으되 서로 다른 책을 읽은 셈이다. 대가의 독서법은 이와 다르다. 그들은 통째로 삼킨다. 파죽지세破竹之勢다. 문장의 행간에서 작가의 고심을 읽어 낸다. 표현 기교에 감탄하며 자신의 글쓰기에 적용한다. 정의와 시비의 소재를 살피고, 바른 삶의 자세를 익힌다. 애꾸눈으로 읽지 말고 두 눈으로 읽어라. 눈에서 그치지 말고 마음으로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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