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작가 지망생의 습작과정 그 이상을 의미한다. 글쓰기 훈련은, 감각하는 방법, 사유하는 방법, 상상하는 방법, 그리고 실천하는 방법까지도 스스로 다시금 점검하고 익혀 나가는, 무척이나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중요하고도 원대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아노 같은 악기나 사진 찍는 기술은 좀 다룰 줄 알거나 다루고 싶어 하면서도, 자기 언어는 형편없이 다루며 살아가고, 그러면서도 그것에 대해서는 고민조차 하지 않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언어를 지나치게 거칠게 혹은 안일하게 혹은 편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만큼 거칠거나 삭막하거나 조악한 사유나 신념이나 인간관계에 스스로 시달리며 살고 있는지. 언어의 발견을 인류사의 가장 놀라운 사건이라 한다면, 언어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야말로 인류사의 가장 놀라운 두번째 사건이라 일컬을 만하다.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변하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무엇인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미미하게라도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의식뿐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내면세계 전체로 변화를 꿈꾸는데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화는 당연히, 반드시,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것도 현실에서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나는 정말로 내 꿈에 전념하고 있는가?
정말 놀라운 사실은 천재가 드문 딱 그만큼, 우리 주변에 자기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희귀하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전념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살펴보는 매우 간단한 테스트 방법이 있다. 앞서 소개한 성철, 산속의 선승, 김수영, 전태일 등을 응용하는 것이다. 테스트는 다음과 같다.
- 아침에 눈을 뜨면 소변을 누기 전에, 물을 찾기 전에, '여기가 어디지?' 파악하기 전에, '몇 시나 되었지?' 알아보기 전에, 먼저 자신의 꿈과 관련된 사념을 떠올리고 있는가?
-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느라 맥없이 앉아 있거나 샤워하느라 마음을 놓고있는 그 순간에, 자신의 꿈과 관련된 사념을 떠올리고 있는가?
- 하루를 아무리 열심히 살았더라도,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꿈과 관련되어 스스로의 게으름을 다그치게 만드는 어떤 아쉬움이 남아 있는가?
독서는 양적 문제가 아니다. 옆자리에 누워 자고 있는 고단한 어머니를 흔들어 깨울 만한 열정이 중요하다. 질이 아니라 양에 치우치는 독서라면 그만 멈추는 것이 더 낫다. 적게 읽었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고 많이 읽었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밑줄 긋는 부분, 혹은 자세를 곧추세우고 일어나 바로 앉는 각성의 빈도수와 강도가 바로 독서의 핵심이다.
함부로 언어를 남용하지 않고 반대로 지나치게 인색할 정도로 엄밀하고 정확한 어휘와 묘사를 통해 문장을 구사하는 과정은, 장르를 불문하고 무든 글쟁이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가치다. 우리의 경험과 지각 - 느낌.감정.정서.생각.상상력 등 - 은 대부분 매우 복합적이고도 세밀한 체험이어서, 이것을 언어로 풀자면 꼼꼼히 헤아려서 풀고 또 풀어내야 한다.
감상적.도식적.윤리적.일상적.상투적.통념적 언어질서에 복종하는 글쓰기는 약자의 글쓰기다. 반면 스스로의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생성해 내고 즐기며 기성문법을 넘어서는 새롭고 낯선 소수언어를 만드는 자가 비로소 작가고 예술가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언제나 소수언어로서의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란, 기성질서와 언어에 저항하고, 기성질서와 언어를 전복하고, 무엇보다 기성질서와 언어보다 더 강해지고 넉넉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언어는 자연스레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언어이고 저항의 언어이고 전복의 언어이고 강자의 언어이고 난장(亂場)의 언어다.
단순히 등단을 위해서나 저서를 출간하기 위한 개인적 욕심으로 글쓰기를 공부하면 조금만 힘겨워져도, '내 주제에 무슨, 괜한 욕심이지!' 하고 힘겨울 때마다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만다. 하지만 글쓰기 훈련을, 자신의 감각과 인식과 상상까지도 새롭게 만드는 근원적이고도 전복적이고도 생동적인 욕망으로 인식하는 한, 우리는 언제든 새롭게 기꺼이 다시 도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문장 하나가 좋아지는 그만큼 나는 어쨌거나 새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도무지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글쓰기 공부는 단순히 직업적 글쓰기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아니다. 한결 본질적이고 다층적이고 활용적인 훈련이다 실질적 정직을 통해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시각과 강도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기성질서 및 일상감각을 전복하고 자기만의 새롭고 자유로운 감각.사유.상상을 펼치는 일이다. 언제나 인식적이고 언제나 실천적인 행위이다. 쓰기를 중심으로 자신의 말하기.읽기.듣기 등의 언어수행 전반을 수정하고 훈련하는 일인 동시에, 언어 및 사유의 변화를 통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관계망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언제나 자신의 다양한 잠재성, 혹은 다양한 측면들이 서로 관계맺고 있는 매우 중요하고도 예민한 센서 지점을 촉발시키는 공부이고, 공부여야 하고, 공부일 수밖에 없다.
언어는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섬세하고 너무나 예민해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나오지 않으며, 단 한 글자도 속일 수 없다. 한 문장 한 문장의 변화가 곧 내 삶의 한순간 한순간의 변화일 수밖에 없다. 언어에 대한 이와 같은 온전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의 글쓰기는 너무나 정밀한 공부이자 무척이나 원대한 공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