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이란 무엇인가?
표현의 기술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표현의 방식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봅니다. 유시민은 작가이기 때문에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정훈이 만화가는 그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맞는 도구로 목적에 맞는 표현을 합니다. 표현表現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언어나 몸짓 따위의 형상으로 드러내어 나타냄 이라고 되어 있네요. 아마도 대부분의 표현은 언어나 몸짓이 도구가 되는 것 같습니다.
표현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저는 어떻게 표현하면서 살아가고 있나 궁금해졌습니다. 저의 직업은 개발자입니다. 저는 많은 시간을 혼자서 코딩을 하며 보냅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어떤 표현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던 것이죠. 코딩도 표현의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 겁니다. 코딩도 컴퓨터가 이해하도록 작성하는 언어라는 측면에서 표현의 방식이 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컴퓨터는 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컴파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하지만 개발자는 사람이 이해하는 코딩을 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 코딩을 할 때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먼저 제가 이해를 해야 되겠죠.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코딩을 남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시간이 좀 많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나만 보는 코딩이라면 굳이 하지 않았을 여러 가지 작업을 하게 되죠. 한번 쓰고 버릴 코딩이 아닌 재사용을 고려한 코딩을 하게 되는 겁니다. 글쓰기에서도 퇴고의 과정이 있으니 어느 면에서는 코딩과 닮았군요.
또한 개발자는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수단을 통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협업을 합니다. 협업자들은 모두 각자 프로젝트의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문제점은 각자 이런 요구사항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해도와 해석의 기준이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기적인 회의를 진행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진행상황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지만 프로젝트 참여자가 모두 참여한 회의에서 각자의 프로젝트 해석의 차이를 좁혀갈 수 있죠.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표현하는 방식은 업무영역에 따라 다양합니다. 기획자는 기획문서를 통해, 디자이너는 디자인 결과물을 통해, 개발자는 최종 결과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합니다. 일의 영역으로 들어가니 일의 과정에서 작성한 결과물이 과연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게 맞는 것일까란 의문이 드네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써 사용해야 하지만 생각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좀 애매하긴 합니다.
제 직업에서의 표현은 읽고 해석하기 편한 코딩과 요구사항에 따른 결과물의 완성도에 의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일로써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코딩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못하는 것이 저는 못내 아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좀 부럽긴 합니다. 결국 어떤 표현의 도구를 가졌든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글은 써야 하는 거네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겠죠. 코딩으로 이런 느낌을 전달할 순 없으니까요.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나?
이 책에서 작가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조지 오웰의 저서 나는 왜 쓰는가 의 내용을 인용합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입니다. 과학자나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도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죽은 뒤에도 사람들이 잘난 인물로 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요. 둘째는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열정 입니다. 자신이 보고 느낀 세상의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하며,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글에 담아 타인과 나누려고 한다는 것이죠. 셋째는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충동입니다. 자기가 발견한 사실과 진실을 기록해 후세에 남기려고 하는 욕구는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과 관계가 있습니다. 넷째는 정치적인 목적입니다. 여기서 정치적인 목적이란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 입니다.
저는 왜 글을 쓸까요? 정확히 얘기하자면 왜 글을 쓰려고 할까요?
조지 오웰이 언급한 4가지 이유 중에 둘째, 미학적 열정 그리고 넷째 정치적인 목적입니다. 조지 오웰의 분류에 따른 글을 쓰는 이유로 보자면 유시민 작가와 같네요. 그런데 저는 이 두 가지에 앞서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지식에 대한 욕망 때문에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러다 보니 깊이 생각하지 않고 빨리 다른 지식을 접하고 싶어 조바심이 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니 별로 남는 게 없어요. 분명히 뭔가를 하기는 했는데 남에게 설명하려고 보니 잘 모르겠는 겁니다. 쓰기의 힘을 알지만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지도 알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많이 핥기보다 깊이 파자. 저에게는 이 이유가 가장 큽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네요.
두번째 이유는 미학적 열정 때문입니다. 제가 느낀 것들을 남들도 똑같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 감정을 똑같이 느끼게 할 방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감명받은 콘텐츠를 무턱대고 남에게 권유한다고 해서 같은 느낌을 받을 순 없겠죠.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치가 달라 같은 콘텐츠도 다르게 느낄테니까요. 그 간극을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좁힐 수 있다고 믿는 겁니다.
세번째 이유는 정치적인 목적입니다. 이건 제가 글을 쓰는 이유라기보다는 일종의 바람입니다. 미학적 열정에 의한 글쓰기가 정치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죠. 하지만 이것이 제가 글을 쓰는 최종 목표는 아니기 때문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럴 일도 별로 없을 것 같고요.
여러분은 왜 글을 쓰시나요?